오늘 집에 귀빈중에 귀빈인 막내 아들내외가 온다. 사람에 따라선 아들부부가 무슨 귀빈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자식도 크고 나면 귀빈 아닌 대단한 귀빈이라는 생각이 나만의 생각은 아닌 듯싶다. 그 말은 그만큼 내게 있어서 소중하다는 말이다. 또한 그들 역시 부모를 그렇듯 깎듯이 대하니 피장파장이 아닐까.
가자미 조림을 하려고 먼저 냄비에 무를 깔고 토막 친 가자미를 앉히고 양파와 파를 듬뿍 썰어넣어 불에 올렸다. 그리고 양념을 한가지씩 더 넣을 때마다 부글거리는 소리와 더불어 미묘하게 변하는 냄새가 난다. 순간 나도 모르게 “이거야, 정말. 이런 냄새가 나면 제대로 맛깔스러운 음식이 되겠지?” 하고 흐믓해졌다. 그때 문득 요리사와 작가의 일맥상통한 공통점을 알아 차렸다.
비유하자면 대여섯 명의 여인에게 똑 같은 식 재료를 준비해놓고 음식을 만들어 보라고 하면, 양념을 어디에 얼만큼 넣느냐에 따라서 제각각 다른 맛의 음식을 만들어낼 것이다. 짠것, 매운 것, 싱거운 것, 때론 별 맛없이 덤덤한 것도.
거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식 재료 선택에서부터 칼질, 조미료와 향신료, 간을 무엇으로 하느냐가 중요하리라. 소금 간과 간장을 구분해서 써야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쉬운 듯 그러나 그것이 뒤바뀌어도 음식의 맛은 버린다. 또한 고추 가루와 식초 역시 가려 써야 함은 물론이다. 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성’이 들어가야 함은 필수일 것이지 싶다.
글쓰기 역시 어느 장르를 망라하고 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공유한 세상에 거미줄처럼 보이지 않게 널려있는 수많은 소재 중에서, 작가의 독특하고 예리한 눈으로 제대로 포착하고 판단해 건져올리는 것이 첫번째가 아닐까. 또한 아무렇게나 써도 다 글이 될 것이라고 무책임한 의식을 가져선 안 될 것이다.
기교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수필이라는 그릇에 영성과 철학, 그리고 사유와 해학까지도 골고루 섞어 담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듯 진지한 작가의 자세로 글을 쓰고 다듬어 낸다면 아마도 간이 잘 맞는 맛깔스러운 글이 탄생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려면 끝없는 ‘열정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지 싶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작가와 요리사의 미묘한 동질성이 느껴진다.
음식에서 식 재료가 중요하듯이 글쓰기에서도 먼저 소재를 잘 취사선택해 그로부터 깨달음을 이끌어내야 한다. 영성과 깨달음의 철학이 둥지를 틀어 작품 속에서 자리를 잡으면 하나의 문학의 옷을 입은 작품이 탄생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소재가 좋다고 다 좋은 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어휘가 놓일 자리에 놓여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지나친 미사여구를 쓰면 글의 품위를 해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깊은 사유의 세계에서 삶을 성찰하면 맛깔스러운 글쓰기에 도움이 될 것이지 싶다.
사실 수필의 수준 차이는 문장 쓰기가 아니라 사유와 성찰과 영성이라는 미학에 의하여 좌우되기 때문이라는 것은 거듭 말해도 좋을 것이라고 여긴다. 독자의 견해가 다 각각 달라 때론 ‘아니야’ 하는 것도 ‘좋아’로 바뀌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글쓰기가 참으로 까다롭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음식 만들기를 부뚜막에서 어머니 어깨 너머로 익혔듯이, 글쓰기 역시 나는 혼자 윤재천 교수님의 책을 참고서 삼아 배웠다. 문학에 있어서 오지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소경이 문 꼬리 바로 잡듯 어쩌다 윤 교수님의 책을 만났고, 그로써 혼자만의 쓰기 방식을 터득하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지난해에 한국 방문 시 윤 교수님을 뵙고 그런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인사를 했다. 윤 교수님은 그렇듯 열정적인 나를 격려하시면서 서점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귀한 수필이론서 전집 10여권을 선물로 주셨다. 열정이 대단한 후배에게 “이 책은 미국으론 처음 가는 겁니다” 하는 말씀을 덧붙여 주셨다.
내가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을 땐 이곳에서 아무도 단 한마디의 조언을 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문학이라는 것이 설령 먼저 시작한 선배라 할지라도 섣불리 나서서 이는 이렇고 저는 저렇다고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특히 문학이란 틀에 찍어내듯이 천편일률적으로 한가지방식만으로 써내선 안되기 때문이다. 혼자 글쓰기책을 정독하며 노트하고 쓰고 다듬고 사색하며 자신만의 틀을 만드는 것만이 가장 유일한 방법이라고 이제서야 감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삼다三多’의 원칙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물론 문학이라는 너른 장을 생각하면 어느 만큼은 타고난 재능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큰 축복이겠지만, 결국 관건은 열정이다. 얼마나한 열정으로 문학을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고로 나는 오늘도 고뇌한다. 어떡하면 간이 딱 맞는 맛깔스러운 글을 써낼 수 있을까 하고.
박유선
수필가, 월간 <수필 문학> 등단
미주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논픽션부분) 당선
한국문인협회 회원
저서 : 수필집 '길 없는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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